-「제왕적인 대통령제」
- 절대적인 권력 지향
- 여야당의 대립 격화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에 바로 철회된 대통령은 지금 탄핵·파면 여부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한국 정치는 어떤 상황인가. 무엇이 윤석열 대통령을 큰 잘못으로 만들었을까. 오랫동안 국회의원 생활을 한 보수 중진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문제의 본질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계엄령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은 북한과 싸운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져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습니다. 1953년 휴전 이후 그 나라를 바로 피와 땀과 눈물로 재건하고 도움을 받는 쪽에서 주는 쪽이 된 것입니다.
단기간에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정보화를 이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있습니다. 그 생각이 계엄령이라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외적으로도 그동안 쌓아온 한국의 신인도는 뚝 떨어졌을 것입니다.
--윤 전 대변인은 취임 때부터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는 비상계엄의 이유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것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수단과 절차가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넘어서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내놓음으로써 스스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습니다.
--역시 그 정도로 몰리고 있었다는 건가요?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훌쩍 넘는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행태에 지나친 점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하자가 없는 각료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를 하는 검사들을 차례로 탄핵하는 등 횡포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참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견디어 내고 유권자에게 판단을 받는다. 화가 나니까 계엄령이라는 게 말이 안 돼요.
윤씨의 약점은 술, 성질, 말
--검찰 외길에 살아온 윤씨를 떠받든 것은 여당 여러분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된 후유증을 질질 끌면서 우파 보수 진영 중에 이길 후보가 없었다. 그럴 때 빛을 발한 것이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다(법에만 따르겠다)며 많은 정치인을 소추해 온 검찰총장 윤 대통령이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상의하달의 조직으로 상사의 명령은 절대. 더욱이 윤 대통령의 약점은 술, 성질, 말 등 세 가지가 지나치다는 것을 모두 충고해 왔습니다. 사사건건 술을 많이 마시고 주위에 분통을 터뜨리며 말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만다. 검찰 간부의 심정대로 정치지도자가 돼 버렸다. 설사 정의감이 있어도 인내심이 없으면 민주정치를 할 수 없습니다.
--기존 한국의 보수와는 다르다는 건가요?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보수정권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 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라는 한국에서 진보라 불리는 좌파 정권도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현재 여야를 이끌고 있는 것은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동안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항상 자기성찰, 자기개혁을 해 왔습니다. 이번 계엄령과는 반대되는 생각입니다.
--진보세력은 어떤가요?
지금의 진보는 자신의 신념만 관철하려 할 뿐 이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포용력이 없는 거죠. 예산을 뿌리는 포퓰리즘도 눈에 띄어 돈으로 표를 사는 듯한 면이 있다. 진보라기보다는 낡고 진부합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배제 논리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정한 진보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건 김대중 대통령 정도예요.
안이하게 잘리는 탄핵카드
--야당은 '탄핵 카드'를 꺼내고 있네요.
헌법에는 분명히 국회는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닙니다. 수의 힘으로 각료들을 협박하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노무현, 박근혜 두 명의 현직 대통령이 탄핵소추되었습니다.
노 씨의 경우 법으로 금지된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탄핵 이유였습니다. 노 당선자는 진보 성향이었고 우리 당시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제안했지만 의원이었던 저는 대통령을 그만두게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그 한 달여 뒤 총선이 있었고 당은 저를 공천하지 않겠다고 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노 당선자는 헌법재판소가 기각해 대통령에 복귀했지만 박 당선자는 파면됐습니다.
박 당선인은 지인을 국정에 개입시킨 것 등이 문제가 됐지만 저는 탄핵 재판보다는 박 당선인이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박 대통령 주변은 탄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탄핵 재판에 임했지만 거센 여론의 압력을 느꼈는지 헌법재판소가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그때 저를 포함한 중진들의 의견을 듣고 사임을 표명하고 질서 있는 퇴진을 했다면 혼란은 가라앉았고 보수가 궤멸 상태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중대한 사건인 만큼 헌법재판소가 철저히 위헌, 불법 여부를 심리해야 합니다.
--탄핵·파면이 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가 됩니다.
야당의 이 대표 자신도 많은 혐의를 받고 있어 그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 대선을 치르고 싶은 마음이 급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대표는 대통령 자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해꾼은 모두 탄핵하고 국정을 마비시킨다. 그런 속 좁은 정치 지도자를 유권자들은 원할까요? 탄핵 남발은 정치문화를 후퇴시킬 뿐이다. 유권자들은 차기 대통령에게 적합한 그릇인지도 가만히 보고 있습니다.
--왜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좌우 양극화가 진행되었을까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하나는 정치인이 되는 과정의 문제입니다. 여야 모두 보스의 권한이 절대적이어서 공천을 받고 싶은 자는 충성을 맹세한 나머지 적을 철저히 공격해 악마화하고 만다. 당선 후에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 공천을 받을 수 없는 정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국의 지나치게 치열한 수능 경쟁도 배경에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데만 치중한다. 더 인성교육이 필요한데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어요.
--언제부터 양극화가 진행되었나요?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권에서입니다
--노 씨는 한국에 뿌리 깊은 지역감정 극복을 계속 호소한 대통령이죠.
그렇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립은 격화됐습니다. 그 큰 요인은 국내에 다양한 시각이 있는 한국의 현대사를 일방적으로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남북 분단의 원흉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만 보고 좋은 면을 전혀 평가하지 않았다.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현재의 대통령제를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지속된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룰 때 시민들이 가장 갈망했던 것은 대통령을 스스로 뽑는 직접 투표가 아니었습니까.
맞아요. 하지만 이제 완전히 그 사명은 완수했습니다. 임기 5년이라는 한국과 같은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는 따로 없습니다.
대통령 권한의 대폭 이양을
--왜 대통령제와 양극화가 관계가 있습니까?
저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 청와대에서 비서관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게다가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검찰, 경찰, 국세, 정보기관, 방송과 통신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융위원회 등의 총수 임명권은 모두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대법원, 헌재 수장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 등으로 불리는 절대 권력을 목표로 각 당의 두목이 각축전을 벌입니다. 그 밑의 정치인은 보스를 부축해 혜택을 받으려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악순환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5년 안에 어떻게든 절대 권력에 매달리려는 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8년 국회의장이 됐을 때 일성으로 헌법을 바꾸자고 당부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임기를 4년으로 하고 재선을 허용해야 한다는 연구기관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대통령 임기를 놓고 개헌의 필요성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왜 실현되지 않는 건가요?
그때 현직 대통령이 난색을 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헌을 주장할 당시에는 이명박 대통령이었는데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참모들이 굉장히 싫어했어요. 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아무도 그것을 짧게 하라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개헌이 되면 이슈는 그쪽으로 옮겨가고 자신의 레임덕화가 빨라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대통령의 임기를 바꾸는 것만으로 문제가 개선됩니까?
권한을 대폭 이양하지 않으면 제왕형 대통령이 오래가는 독재국가가 될 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내각제로 해야 한다.
아무리 근소한 차이라도 당선된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을 주는 제도는 수명을 다했습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대변하는 의원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한다. 또 어떤 정당이나 개인이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양원제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에서 그 기운이 무르익고 있나요?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 정도의 정치적 대혼란을 초래했으니 오히려 개혁의 호기로 보고 이번 기회에 단번에 크게 변혁해야 합니다.
--이번 계엄령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윤 대통령에 대해 가장 평가하는 것은 악화됐던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입니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정말 용기 있는 결단을 했습니다. 미국과의 관계도 복원했습니다.
작은 문제를 키우고 큰 문제를 작게 만드는 세력이 한일 양측에 있습니다. 그러나 격려가 되는 것은 양측 시민 간의 교류입니다. 일본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 1위는 한국. 그것도 압도적인 1위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 유치 활동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기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것을
--앞으로 한일은 어떤 협력을 해 나가야 할까요?
양국이 잘하는 분야를 살려 협력해 세계로 나가겠다. 앞으로는 AI(인공지능) 분야 등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한일을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어느 종교단체가 하는 게 아니라 두 정부가 주체가 돼 진행한다. 규슈와 부산을 연결하면 상징성뿐만 아니라 실용성 면에서도 크게 관계가 비약합니다. 영불이 되고 한일이 안 될 이유가 없다. 그런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형오 1947년생. 서울 대졸. 동아일보 기자,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을 거쳐 1992년부터 국회의원. 5선 연속 당선되어 의장 등을 역임한 후, 2012년에 은퇴. 지난해 8월부터 게이오대 방문교수로 일본에 체류 중. 저서 '술탄과 황제'(미번역)는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2025-01-10 아사히신문]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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