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큐멘터리스트가 본 2009년 최고의 영화 <여배우들>
유명 연예인과 공공장소에서 일대일로 맞닥뜨려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때 그 상황에서 그들 스타들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는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그 상황에서 대부분의 스타들은 시선을 황급히 거두어들인다. 쳐다보는 사람이 약간은 머쓱할 정도로....( 정치인들은 어떨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무표정하게 상대를 바라보거나 또는 먼저 눈인사를 건넨다. 실험해보라...정말 그럴 것이다.^^)
생존해있었다면 이 영화에도 출연했을 법한 여배우 이은주 또한 그랬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 분당 탄천 산책로에서 마주친 그녀는 마치 산길에서 산적을 만난 것처럼 당황하며 서둘러 눈길을 허공으로 돌렸다. (그녀는 가로등에 한 팔을 기댄채 오른쪽 신발을 들어 털어내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심하게 내린 다음날인 일요일 초저녁이었다. )
<여배우들>에서 샴페인에 취해 감정이 한껏 고조된 고현정의 넋두리가 지금은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여배우 이은주를 떠올리게 했다. 산책길에 고현정을 만났더라도, 그녀 또한 그러했으리라.......
"우리 여배우들은 백화점 같은 데를 그냥 혼자서는 못다니잖아~~ "
그랬다......그래서, 그녀들 여배우 6명이 한곳에서 만나 영화를 만들었나보다.
그리고 작정이나 한 듯, 하고 싶은 말들을 세상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냈나 보다....
혹시 이것도 감독의 의도일까? 여배우들은 이런 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
<조선남여상열지사 스캔들>,<다세포소녀>, <정사(情事)>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은 여배우들을 패션잡지 <보그> 촬영현장으로 모두 집합시켰다. 그리고 내내 한 곳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너무 성의가 없다는 둥, 무릎팍도사의 영화버전이라는 둥 지껄여댔지만, 감독의 탁월한 상황 설정과 여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력은 그런 안티-감상평들을 한 방에 잠재울 정도로 훌륭했다. ('안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일 것이다.)
<여배우들>. 이 영화를 보면서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상영된 일본 영화 <웰컴 투 미스터 맥도날드> 라는 영화가 떠오른 건 아마도 배우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그런 설정이 공통분모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영화에서는 성우들이 모여 라디오 드라마를 완수해야만 했고, <여배우들>에서는 잡지 사진을 찍는 설정이었으니까.....
이 대목에서 필자는 이재용 감독이 <여배우들 2> 를 염두에 둔 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아마도, 이재용 감독은 내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여배우들이 모여 한 편의 TV광고를 촬영하는 영화로 충무로에 다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패션화보 촬영>에서 <TV광고 촬영>으로 변환되는 비주얼을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짜릿하지 않은가??
"우리도 할 말 많아요! "
누군들 할 말이 없으랴. 그 중에도 특히 고현정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하기가 정말로 힘든 영화라는 점은 바로 고현정이라는 여배우때문에 성립되는 이 영화의 특징이기도하다.
영화 홈페이지 사진 왼편에 덧붙여져있는 인물 각각을 대변하는 듯한 영어단어를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보자. <여배우들>이란 영화에서 줄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1. Scandal
영화 속 고현정은 현실의 고현정과 얼마나 같을까, 또는 다를까? 영화를 보며 그녀가 카메라의 중심피사체로 등장할 때마다 그 점이 물음표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영화 속 대사는 매스컴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그녀 고현정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최지우 얼굴을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밀며..) "내가 쫒겨났는지 최지우 네가 어떻게
알아? 뭘 안다고 그래, 엉 ??"
-(젊고 잘 생긴 막내동생뻘되는 남자를 데려와 소개하며..) "같은 회사 동생이야. 정말이야"
2. Jealousy
김민희. 할 말 많은 20대 후반의 꽃다운 그녀이지만, 하고 싶은 말을 잘 참는 그녀였다.
그녀는 토끼처럼 예쁜 눈망울과 다소 터프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여배우들>속에 등장한다. 그녀의 심중을 잘 드러내는 대사는 이 한 마디였다.
- " 나도 남자한테 인기 많아요~~ "
영화배우로 뜬 김옥빈처럼 자신을 자주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고, 원더걸스의 10대 아이돌 '만두 소희'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긴 20대의 회한(?)은 영화속에서 두통으로 표현되고, 시니컬한 말투로 나타난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의 지방순회 홍보현장에서 김민희는 무척 좌절한 듯 보였다. 10대와 20대초반에 치이는 20대후반 여배우로 그려지고 있다.
3. Mystery
<여배우들>속 이미숙은 50대이면서 2,30대와 60대 윤여정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 윤여정 만큼이나 달관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여자로서의 욕망과 여배우로서 주목받고 싶은 열망이 꿈틀대는 나이 50의 이미숙은 길거리나 아파트 상가에서 흔히 만나는 이른바 '대한민국 아줌마'같은 말투로 자신의 지난 삶을 풀어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솔직한 캐릭터는 아마 이미숙일 것이다. 가끔씩 묻어나오는 약한 충청도 사투리는 그녀의 또다른 매력으로 느껴질 정도....
" 그래서 난 거기 (<뜨거운 것이 좋아>지방 홍보) 안 갔잖어.."
" 난 뜨겁지가 않았나보지 뭐......"
" 사람들은 여배우한테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어.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이상한 사람이 돼버리는거야. 여배우들은 그게 최고 스트레스야.."
4. Fame
스타 이미지로 가득찬 느낌. 최지우였다. 여전히 '실땅님'을 연상하는 묘한 발음이 묻어났지만, 그녀는 한류의 대표주자로 영화속에 등장하고 있었다. 최지우는 마치 <그대 웃어요>에서 이민정의 엄마로 출연중인 허윤정(극중 이름 공주희) 같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아니, 그게 최지우 그녀의 현실 속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 Complex
김옥빈. 허무주의적인 20대 역할을 잘 소화했다고 보여진다. 살이 찌지도 않았는데, 살이 쪘다고 자학(?)하는 김옥빈은 영화 초반 '음산하다','음산기가 있다', '음산하다는 말 나쁜 말 아니다, 너..' 등등의 평가를 선배들로부터 받고 '썩소'를 짓는다.
6. Pride
윤여정. 1947년생. 그녀는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긍정적 체념'을 연기로 보여줬다. "그 못생긴 놈한테 내가 차였잖아..." 라며 얼마전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에게 털어놓은 그 스토리를 잠깐동안 웃음보따리와 함께 풀어내는 윤여정. 그녀는 한마디로 프로였다. 프로!
7. Conflict
갈등이 없으면, 그건 이야기가 아니다. 최지우와 고현정의 갈등은 결국 밋밋하게 매듭지어졌지만, 그 시작은 심히 창대하였다. 도대체 이 갈등은 어디로 향해 치달을까,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그러나,,,,,
8. Compromise
갈등의 끝은 심히 미약하였다. 그 갈등이 좀 더 폭발력있게 전개되었더라면, 이 영화는 훨씬 더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샴페인 몇 잔에...선배 여배우들의 이혼 회고담에....순식간에 화해는 이루어져버렸다. 그 점이 옥에 티라면 티였다고나 할까...
9. Color
색깔있는 영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강렬한 색감을 닮은 영화였다. <Vogue>의 화보를 찍는다는 설정인만큼 화려하고도 위압적인 색감이 도드라진 영화였다. 최지우와 이미숙이 입은 옷과 가방,뒤의 커튼 색깔을 유심히 비교해보라. 참, 최지우의 부츠 색깔도....
10. Outstanding Figure
고현정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감독의 캐스팅이 빛나는 대목이다. 고현정 그녀가 앞으로 영화계의 큰 별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다.
<여배우들>. 이 영화는 내년 2010년 대종상,청룡영화상 등등의 굵직한 영화상을 모조리 휩쓸 가능성이 가장 높은 2009년 하반기의 최고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을 뛰어넘는 수작이 내년 상반기와 여름에 쏟아져나올 것을 기대하곤 있지만.......
( * 이자리를 빌려, 고인이 된 여배우 이은주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 때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서....사실 필자는 곤경에 처한 여성이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아서, 유심히 상황을 관찰하다 이은주 그녀인 것을 알아챘을 뿐이었다. )
posted by 백가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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